반도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초록색 배경 위에 금색 선들이 복잡하고 징그럽게 휘감겨있는, 공학도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미지다. 이 ‘배선 이미지’는 반도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사실 배선은 반도체가 아니다.) 심지어 인공지능에게 반도체를 검색하면 배선 사진이 나온다. (배선은 '도체'다.) 배선은 단면을 봐도 멋있다. 층층이 쌓여 있어 보이는 사진은 '이게 바로 반도체지'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다시 말하지만 '도체'다.)
앞서 3번이나 언급했지만, 배선은 도체이다. 도체란 전기가 통하는 물질, 부도체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 반도체란 전기를 제어할 수 있는 물질이다. 그렇다면 왜 세상(?)은 반도체를 표현할 때, 한낱 도체인 '배선'을 그려놓고 열광하는가? 간단히 생각해 보면 3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1. 눈에 잘 보인다. 2. 반짝인다. 3. 모양이 신기하다.
앞의 두 가지는 이해하기 쉽다. 1. 배선은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잘 보이고, 2. 전기를 통하는 물질이 금과 알루미늄 같은 반짝이는 금속이라고 대충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저렇게 복잡한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쉽게 납득이 안 된다.
반도체를 다 만들고 배선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저항을 고려해야 한다. 저항은 전기가 얼마나 잘 흐르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다. 배선이 길다면 저항이 높아 전기가 흐르기 힘들다. 반대로 짧다면 전기가 금방 잘 흐르므로 저항이 낮고 빠르다. 각각의 반도체를 이어줄 때 배선마다 저항이 다르다면... 큰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지 않다. 서로 신호를 보내며 짝을 맞춰야 하는데, 그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 따라서 저항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돌아가기도 하고 지름길을 택하기도 하기 때문에 정형적이지 않은 신기한 모양의 배선이 나온다.
이쯤에서 이 시리즈의 고정 순서인, 고장 내는 법을 알아보겠다. 배선은 고장 내기가 너무 쉽다. 끊어도 되고 다른 배선끼리 이어도 된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고장 내면 재미가 없다. 우리는 서서히 고장 내는 걸 원하므로(왜?) 다른 방법을 알아보겠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배선 사이에 아주 작은 금속 조각을 두는 것이다. 이때 더 확실하게 고장 내기 위해 한쪽 배선하고만 금속을 붙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금속 조각과 연결되지 않은 배선이 서서히 붙게 되어 두 배선이 연결되게 된다. 다른 방법으로는 배선 중간을 살짝 얇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높은 저항을 가진 얇은 부분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녹아서 배선이 끊어지게 된다.
오늘은 반도체 하면 딱 떠오르는 '배선 이미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실은 도체이면서 반도체로 이름을 날리는 희대의 사기꾼의 실체를 파악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사기꾼을 고장 내는 법까지 알아냈으니 충분히 보람찬 독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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