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일상 7. 메모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수익을 내는 반도체 제품은 단연 메모리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USB나 아이폰의 128GB 저장 용량 모두 메모리의 친숙한 예시다. 전자기기에서 숫자 뒤에 GB나 TB가 붙은 것은 대부분 메모리라고 볼 수 있다.

메모리는 한국어로 '저장'이라는 뜻이다. 저장이란 어떤 물건을 보관한다는 의미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과 다르지 않다. 메모리를 일상생활에 비유하자면 물품보관소와 유사하다. (물품보관소를 본 적이 없다면 서랍을 떠올려보자.) 예를 들어, 손에 들고 있는 짐이 너무 많아 20번 물품보관함에 잠시 짐을 맡겼다고 하자. 시간이 지난 후 짐이 필요해져 20번 보관함으로 가서 짐을 꺼낸다. 이것이 메모리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다.

 짐은 전자이고, 나는 컴퓨터이며, 물품보관함은 시간을 지연시키는 반도체 소자 중 하나다. 컴퓨터가 전자를 시간을 지연시키는 장치에 넣어 전자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필요할 때 보관함을 열어본다. 전자 그 자체에는 어떠한 정보도 없으므로, 보관함에 전자가 있는지 없는지의 정보를 확인한다. 전자를 잡아두는 보관함을 적어도 8천만 개 정도 가지고 있다면 영화 30편 정도를 구성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저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관함을 의미하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반도체 소자'란 무엇일까? 다양한 소자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앞서 반도체 일상 3. 커패시터에서 다루었던 커패시터가 있다. 두 금속판에 전자가 쌓이며 시간이 지연된다. 이렇게 시간이 지연되면 반도체 세계에서는 마치 커패시터가 전자를 저장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이용한 메모리가 삼성, 하이닉스에서 많이 판매하는 DRAM이다. 다른 예로 반도체 일상 1. 트랜지스터에서 다룬 트랜지스터가 있다. 트랜지스터의 절연막에 작은 공간을 만들고 전자를 넣어 보관한다. 절연막에 들어간 전자는 거의 정지한 것처럼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데, 외부에서 전기를 줘야 다시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USB, SSD, SD 카드에서 활용된다. 또한 회로를 구성해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는데, 이러한 방식을 SRAM이라 한다. 이 외에도 자석이나 열, 화학반응을 이용한 소자가 있지만, 잘 팔리지는 않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겠다.

 이제 기다리던 순서! 메모리를 애매하게 고장 내보는 시간이다! 너무 빨리 고장 나면 판매조차 할수 없으므로 소비자에게 가서 고장 나도록 해야 한다. 이전 방법처럼 끊고 잘못 연결하고, 공정을 티나게 이상하게 하면 안 된다. 또한 저장소(물품보관함)를 고장 낸다 해도 그 수가 적다면 요즘엔 기술이 발전해서 ECC(Error Correction Code)로 다시 메모리가 정상 동작하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잘 동작하다가 갑자기 대량으로 메모리 저장소가 고장 나야 한다. 현실적으로 대량으로 메모리 저장소를 고장 내는 건 어려우므로 메모리에 들어가 있는 트랜지스터를 고장내는게 좋다. 이때 처음엔 정상 동작하다가 서서히 고장 나는 부분을 찾아야한다. 마침 트랜지스터에는 적합한 후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절연막’이다. 이 절연막을 조금 안 좋게 만들면 처음에는 잘 동작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나중에가서 고장이 나버린다. 절연막을 약하게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절면막을 형성하는 공정이나, 형성한 이후 공정에서 불소(F)에 노출이 많이 되게 하면 된다. 참고로 이러한 불량은 2019년 삼성에서 실제로 발생했었고, 전문 용어로는 품질 문제에서 유명한 TDDB(Time Dependent Dielectric Breakdown)이다.

 오늘은 각종 매체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메모리에 대해 알아보았다. 메모리는 단순한 창고가 아닌, 시간을 지연시키는 마법사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트랜지스터가 고장 나면 얼마나 골치 아픈 상황이 되는지 보았다. 이 글을 읽은 독자 여러분께서는 앞으로 컴퓨터가 버벅거리거나 저장한 문서가 사라졌을 때, 교양 있게 "아, 나쁜 불소(F)!"라고 읊조려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