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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일상

반도체 일상 9. 반도체 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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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가 필수로 확보해야 할 자원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농경 사회에서는 쌀이었고, 산업 시대에는 석유가 필수 자원이었다. 석유 확보를 위해 전쟁도 빈번히 일어났다. 21세기 정보 시대를 맞이하며 반도체가 필수 자원이 되었고,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사이좋게 지내지 굳이 왜 싸우는지 궁금하지만,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를 보더라도 그 시대의 근간이 되는 자원에 대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경쟁이 있던걸 보면, 패권 싸움이 발생하는 게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반도체 분야를 처음 시작한 것은 "지구의 우두머리" 미국이다. 벨 연구소에서 쇼클리와 친구들이 트랜지스터를 발명하여 회사를 설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반도체 일상 1. 트랜지스터) 쇼클리는 엄청난 고집과 갑질로 악명 높았는데,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MZ 사원 8명이 회사를 떠나면서 그의 회사는 몰락했다.(실제로 MZ는 아니다) 흥미롭게도, 탈주한 사원 8명이 지구의 반도체 전성기를 이끌게 되는데, 페어차일드 회사 설립이 그 시작이다.

 1960년대 페어차일드는 8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간 반도체 칩을 최초로 제작했다. 당시 가격은 현재 기준으로 약 150만 원에 달해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미국-소련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였고, 미국 국방부가 항공, 우주, 군사 용도로 국방비를 투자해 이를 구매했다. 이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으며, 당시 소련과의 경쟁이 없었다면 반도체 기술이 이토록 빠르게 발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1971년, MZ 8인방 중 한 명인 고든 무어가 설립한 인텔은 2,300개의 트랜지스터를 이용하여 첫 CPU를 출시했다. (반도체 일상 8. CPU) 참고로 당시에는 트랜지스터를 10,000nm 수준의 크기로 제작했는데, 현재 삼성은 3nm으로 만든다. CPU와 더불어 인텔은 IBM에서 개발한 메모리인 DRAM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다. (반도체 일상 7. 메모리) 사실 그 이전에도 컴퓨터는 존재했지만, 진공관과 거대한 트랜지스터를 사용해 건물 한 층을 가득 채울 만큼의 크기였다. 반도체로 트랜지스터와 배선의 크기를 줄이고, DRAM으로 빠른 동작을 구현하며 개인용 컴퓨터가 탄생했다.

 이렇게 1970년대 미국은 인텔을 주축으로 AMD, 모토로라,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들이 산업을 장악했다. 이 시기에 미국은 냉전 시대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동북아시아를 우방으로 만들고자 했는데, 반도체 분야에서 그 첫 번째 대상은 일본이었다. 미 국방부는 트랜지스터에 대한 지식을 일본 과학자들에게 전수했고, 미 정부는 일본이 미국 전자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일본 정부도 현재 중국을 능가하는 수준의 반도체 업계 지원을 했다. 그 결과 TV와 워크맨에 주력한 소니가 등장했고, 칩 제작에 강점을 가진 도시바, NEC, 히타치 등의 기업이 부상했다. 특히 DRAM 분야에서 일본은 엄청난 지배력을 확보해 1990년대까지 미국은 CPU를, 일본은 DRAM을 각각 독점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이 반도체의 왕자로 나타냈다.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DRAM 및 NAND 플래시 메모리 생산에 집중하며 치킨게임에서 승리해 2020년대까지 메모리 시장을 장악했다. 한편, CPU(비메모리) 제조만을 전문으로 하는 파운드리 개념을 대만의 TSMC가 도입해 사업을 시작했고, 대규모 R&D 투자로 현재까지 파운드리 산업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반도체 산업의 상황은 어떨까? 우선 TSMC는 대단하다. 일본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중국 정부는 무식할 정도로 막무가내다. 막대한 지원을 쏟아부어 점유율 확보를 위해 수익성을 무시한 채 지속적인 가격 하락 공세를 펼치고 있다. 안타깝게(?) 많은 중국 기업이 망했지만, 그중 살아남은 CXMT라는 기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를 국방과 같은 전략자산으로 규정하고 중국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려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선두주자, 미국의 반도체 산업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좋아서 오히려 문제다. 먼저 반도체 산업의 시작부터 2020년대까지 CPU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인텔은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AP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위기를 맞고 있다. "어라? 미국이 위험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인텔을 제치고 반도체의 왕좌를 차지한 기업들의 목록을 보면 되려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인텔의 빈자리를 채워준 기업은 애플, ARM, 퀄컴, 미디어텍으로, 모두 미국 기업이다. 최근에는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AI 반도체 시장까지 미국의 GPU 회사인 엔비디아가 독점하고 있다.

 오늘은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둘러보았다. 결론은 미국은 짱이다는 거였다. 또한 역사적 흐름으로 보면, 우리가 중국에게 지배권을 넘겨줄 시기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알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가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당분간은 우리 반도체 엔지니어들에게 응원과 감사의 마음을 전해보는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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