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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일상

반도체 일상 10.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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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의 모든 엔지니어와 경영자, 그 회사에 투자한 주주들, 그리고 회사가 위치한 지역의 주민과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은 바로 판매된 반도체가 소비자에게 전달된 후 불량이 발생하는 것이다. 주민과 시장을 왜 언급했는지 저자도 사실 까먹었지만, 회사의 위험이 곧 세금과 집값에 영향을 줘서 그랬으리라 본다. 이런 슬픈 사건을 방지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만든 반도체에서 불량이 날 만한 요소를 모두 평가한 뒤, 통과한 제품들만 판매하는 것이다.

반도체는 배선이 끊어지거나 공정이 잘못되는 등의 큰 문제로 인해, 평가하는 즉시 대량의 불량이 발생한다. 초기에 불량이 폭풍처럼 한 차례 발생한 후, 한동안 불량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반도체 일상 1. 트랜지스터에서 다룬 TDDB(Time-Dependent Dielectric Breakdown)와 같은 불량으로 인해, 초기에는 괜찮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불량이 급격히 증가한다(보통 10년 정도 걸린다).

초기에 불량률이 높다가 중간에 안정되고 나중에 다시 높아지는 이 패턴은 마치 U자 형태의 욕조와 비슷하다고 해서 "Bathtub 커브"라고 불린다(가로축은 시간, 세로축은 불량률). 나중에 발생하는 불량의 경우 예측도 어렵고 원인을 찾기도 힘들어 그냥 수명이 다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회사는 초기 불량을 모두 제거하고, 불량률이 다시 높아질 때까지의 수명을 예측한 후 판매한다. 물론 수명이 나왔다면 소비자에게 "이 시점 이후에는 보증할 수 없습니다"라고 명시하고 판매한다.

그렇다면 초기 불량과 수명을 어떻게 확인할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기를 연결해 20년 동안 고장 유무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애플 같은 소비자가 "반도체 만들어주세요"라고 요청했을 때, "네, 고객님^^. 20년 후에 배송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답변할 수는 없다. 따라서 평가 기간을 최대 하루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20년을 하루로 줄이려면, 반도체를 극한까지 괴롭혀서 잠재적 불량이 모두 드러나도록 하면 된다. 반도체를 효과적으로 고문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높은 온도에서 높은 전압을 오랜 시간 인가하면 된다. 하지만 너무 가혹한 조건을 주면 반도체가 완전히 죽을 수 있으므로 그 경계를 잘 찾아야 한다.

파괴와 불량 검출 사이 미묘한 경계를 찾는 것이 측정(평가) 엔지니어의 역할이다. 가혹한 조건에서 살아남는 반도체가 있다면, "오, 이걸 견뎌? 너는 적어도 40년은 멀쩡하겠군"하며 판매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측정 엔지니어의 스트레스를 위해 소비자에게 가서 불량이 나오도록 하고 싶다. 각종 고문에서 숨겨진 불량을 함구하는 멋진 반도체를 만들고 싶다. 일명 반도체 스파이.(누구를 위해?). 트랜지스터나 배선 문제 같은 일반적인 불량의 경우 이 평가를 피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일부로 불량을 만드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Bathtub 커브를 완전히 평가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래서 모든 반도체를 평가하지 않고 몇 개만 뽑아 대표로 평가한다. 물론 소비자와도 이런 내용을 알고 계약한다. 통계적 방법이므로 잘못된 접근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통계에 함정을 만들어 뮥표를 달성할 수 있다. Bathtub 평가할 때 잘 만들어진 반도체만 선별해 평가하면 된다. 반도체 만든 뒤 간단히 동작을 평가하는 수율 평가에서 불량이 거의 없다면 공정이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수율이 높은 반도체들만 Bathtub 평가에 보내면 원래보다 불량도 훨씬 적고 더 오래 정상 동작한다고 판정이 난다. 소비자에게 가는 반도체는 대부분 선별되지 않은 불량이 높고 수명도 짧은 보통의 반도체이므로 계약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불량을 만들 수 있다.

오늘은 반도체 평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오늘의 교훈은 한 가지다. Bathtub평가에 열과 전기와 시간을 모두 견디는 정예 반도체만 선별하면 안 된다. 환불된 반도체는 재활용도 안 되므로, 환불되는 순간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고, 소비자도 부품을 제때 운용을 못해서 품질에 대한 신뢰도 크게 감소한다. 이전 포스팅인 '반도체 패권'에서도 느꼈지만, 기업이 나락으로 가는 건 한순간이다. 이제 네이버 뉴스로 기술 개발만 보지 말고 품질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도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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